김부식이 삼국사기에 말한 고구려 멸망 원인
김부식이 삼국사기에 말한 고구려 멸망 원인
[김부식이 고구려를 논하다
논하여 말한다. 현도와 낙랑은 본래 조선의 땅으로 기자가 책봉되었던 곳이다.註 001 기자가 그 백성들에게 예의, 밭농사와 누에치기, 길쌈을 가르치고 법금(法禁) 8조註 002를 만들었다. 이로써 그 백성이 서로 도둑질하지 않고, 집의 문을 닫지 않으며, 부인은 지조가 굳고 신의가 있어 음란하지 않고, 마시고 먹는 데에는 변두(籩豆)註 003를 사용하였으니 이는 어질고 현명한 이가 가르쳐 착한 길로 인도한 것이다. 또 천성이 유순한 것이 3방(三方)註 004과 달랐으므로 공자(孔子)가 〔자신의〕 도(道)가 행하여지지 않음을 슬퍼하여 바다에 배를 띄워 이곳에 살고자 하였던 것도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경(易經)』의 효사(爻辭)에는 “2는 칭찬이 많고, 4는 두려움이 많아 가깝다.”註 005라고 하였다
고구려는 진한 이후부터 중국의 동북 모퉁이에 끼어 있어, 그 북쪽 이웃은 모두 천자의 관아[有司]가 있고 어지러운 시대에는 영웅이 특별히 일어나 분에 넘치는[僭竊] 이름과 자리를 가졌으니, 두려움이 많은 땅에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겸손의 뜻이 없고 [천자가] 봉한 강역을 침략하여 원수를 만들고, 그 군현에 들어가 살았다. 이런 까닭으로 전쟁이 이어지고 화가 맺어져 편안할 때가 거의 없었다. [도읍을] 동쪽으로 옮기고, 수와 당의 통일을 만나고도 여전히 천자의 명을 거역하고 순종하지 않으며 왕의 사람을 토굴에 가두었다. 그 완고하고 두려워하지 않음이 이와 같아 여러 번 죄를 묻는 군사가 이르게 되었다. 비록 어떤 때에는 기이한 계책을 세워 대군을 이긴 적도 있었으나 마침내 왕이 항복하고 나라가 멸망한 후에야 그만두었다. 그러나 처음과 끝을 보면, 위아래가 화합하고 뭇사람이 화목할 때는 아무리 대국이라도 빼앗을 수 없었다. 〔그런데〕 나라에 의롭지 않고 백성에게 어질지 못하여 뭇사람의 원망을 일으키게 되면서 무너져 스스로 떨쳐 일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하늘의 때와 땅의 이로움이 사람의 화합만 못하다.”라고 하였다.註 006
좌씨(左氏)註 007는 말하기를, “나라를 일으키는 것은 복이 있기 때문이고 나라가 망하는 것은 재앙이 있기 때문이다. 나라를 일으킬 때에는 백성을 보는 것을 다친 사람 보는 것처럼 하니 이것이 그 복이고, 나라가 망할 때에는 백성을 흙이나 먼지처럼 하찮게 여기니 이것이 그 재앙이다.”註 008라고 하였다. 이 말에 의미가 깊도다. 그렇다면 무릇 나라를 가진 자가 포악한 관리가 〔백성을〕구박하는 것과 강한 종족이 남의 재물을 탐내어 함부로 거두어들이는 것을 내버려 두어 인심을 잃는다면, 아무리 잘 다스려 어지럽지 않게 하고, 보존하여 망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또 어찌 강한 술을 마시고 취하기를 싫어하는 것과 다르리오
論曰. 玄莬校勘 036·樂浪, 本朝鮮之地, 箕子所封. 箕子敎其民, 以禮義·田蠶·織作, 設禁八條. 是以其民不相盗, 無門戸之閉, 婦人貞信不淫, 飮食以籩豆, 此仁賢之化也. 而又天性柔順, 異於三方, 故孔子悼道不行, 欲浮桴於海以居之, 有以也夫. 然而易之爻, “二多譽, 四多懼, 近也.” 髙句麗自秦漢之後, 介在中國東北隅, 其北隣皆天子有司, 亂丗則英雄特起, 僭竊名位者也, 可謂居多懼之地. 而無謙巽之意, 侵其封埸以讎之, 入其郡縣以居之. 是故兵連禍結, 略無寧歳. 及其東遷, 值隋·唐之一統, 而猶拒詔命以不順, 囚王人於圡校勘 037室. 其頑然不畏如此, 故屢致問罪之師. 雖或有時設竒以䧟大軍, 而終於王降國滅而後止. 然觀始末, 當其上下和, 衆庶睦, 雖太國不能以取之. 及其不義於國, 不仁於民, 以興衆怨, 則崩潰而不自振. 故孟子曰, “天時·地利, 不如人和.” 左氏曰, “國之興也以福, 其亡也以禍. 國之興也, 視民如傷, 是其福也, 其亡也, 以民爲土芥, 是其禍也.” 有味哉斯言也. 夫然則凢校勘 038有國家者, 縱暴吏之驅迫, 強宗之聚歛, 以失人心, 雖欲理而不亂, 存而不亡, 又何異強酒而惡醉者乎.]
_권 제22 고구려본기 제10 > 보장왕(寶藏王) > 김부식이 고구려를 논하다()
김부식 : 고구려는 겸손하지않고 중국의 식민지들을 강탈해 거기에 들어가서 살고
중국에 개깝치다 결국 망했다 그러니까 중국에 깝치면 안돼
"고구려는 진한 이후부터 중국의 동북 모퉁이에 끼어 있어, 그 북쪽 이웃은 모두 천자의 관아[有司]가 있고 어지러운 시대에는 영웅이 특별히 일어나 분에 넘치는[僭竊] 이름과 자리를 가졌으니, 두려움이 많은 땅에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겸손의 뜻이 없고 [천자가] 봉한 강역을 침략하여 원수를 만들고, 그 군현에 들어가 살았다. "
고구려는 진나라 한나라 이후부터 중국의 동북쪽 모퉁이에 끼어서 그 북쪽 이웃은 싸그리 천자의 관청들이 있는데도 어지러운 시대를 만나서 영웅호걸들이 특별히 일어날 때를 맞이하야 감히 분수에 넘치는 이름과 자리를 가졌으니 참으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도 모자랄 판에 감히 겸손의 뜻을 품지않고 천자께서 봉하신 강역들을 침략하여 주변 나라들과 원수가 되고, 감히 중국의 식민지 군현에 들어가서 제 놈들 땅으로 만들고 그후로도 지속적으로 깝치다가 결국 망했다. 이 따위로 적는데?
"분에 넘치는[僭竊] 이름과 자리를 가졌으니, 두려움이 많은 땅에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겸손의 뜻이 없고" <= 안 보이니?
분에 넘치는 이름 <= 고高구려. 높을 고高를 쓰다니 참으로 분이 넘치는구나. 분에 넘치는 자리 <= 감히 산골짜기들이 많은 곳에 의거해서 잘도 중국군을 막아내는구나 두려움이 많은 땅 <=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있어서 언제 망할지 모르니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겸손의 뜻이 없고<=그럼에도 겸손하기는 커녕 중국의 뜻을 거스르고 건방지게 중국 사신을 토굴에 가두고 계속 개겼으니 망하지않고 배기겠나?
“수와 당의 통일을 만나고도 여전히 천자의 명을 거역하고 순종하지 않으며 왕의 사람을 토굴에 가두었다. 그 완고하고 두려워하지 않음이 이와 같아 여러 번 죄를 묻는 군사가 이르게 되었다. 비록 어떤 때에는 기이한 계책을 세워 대군을 이긴 적도 있었으나 마침내 왕이 항복하고 나라가 멸망한 후에야 그만두었다.”
천자의 명을 거역하고 순종하지 않았다. , 여러번 죄를 묻는 군사가 이르렀다 , 결국 나라가 망했다. <= 고구려는 천자의 명을 거역하지말아야하며 순종해야하며 죄를 물으면 그 죄를 묻는 군사에 개기지말며 사죄하고 반성해라 그래야 안 망한다 이 소리 아니니
김부식 위인전을 발로 콰직 콰직 밟아버려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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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001
현도와 낙랑은 …… 책봉되었던 곳이다 : 중국 상나라 말기의 인물로 알려진 기자(箕子)가 동쪽으로 갔다는 기자동래설이다. 기자동래설은 중국 한나라 이전의 선진문헌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한나라 때 만들어진 이 나타나는 최초의 문헌은 『상서대전(尙書大典)』 은전(殷傳)에 처음 보이고 다음 『사기(史記)』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에도 등장한다. 두 사서의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기자가 상나라 멸망 후에 조선으로 망명해 백성을 교화시켰으며, 주(周) 무왕이 기자를 조선의 제후에 봉했다는 내용이다. 이후 『한서』 지리지(地理志) 등 문헌에서 계속해서 기자동래설이 기록되었고,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낙랑군 이래 한반도에서 기자의 동래설은 굳어졌다. 고구려에서도 기자신(箕子神)에 대한 제사가 있었고, 고려시대에도 기자 숭배가 지속되어 1102년에는 평양에 기자 사당이 세워지고, 기자묘까지 만들어졌다. 김부식의 사론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註 002
법금(法禁) 8조 : 고조선의 범금8조를 말한다. 고조선에는 8조의 금법이 있었는데 이중 3조의 내용이 현재 전해지고 있다.
註 003
변두(籩豆) : 변두는 중국 고대부터 제기(祭器)로 사용된 그릇이다. 변(籩)은 대나무로 만든 것으로 과실(果實)과 건육(乾肉)을 담는데 쓰이고, 두(豆)는 나무로 만든 것으로 고기·채소류 등을 담는데 쓰인다.
註 004
3방(三方) : 중국을 중심으로 해서 동쪽을 뺀 나머지 세 방향을 일컫는다. 『상서정의(尙書正義)』 여오편(旅獒篇)에 “八蠻在南方, 六戎在西方, 五狄在北方.”이라 하였다. 즉 서·남·북 3방향이다(鄭求福·盧重國·申東河·金泰植·權悳永, 2014,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581쪽)
註 005
2는 칭찬이 많고, 4는 두려움이 많아 가깝다 : 『주역(周易)』 계사하(繫辭下)에 “二與四同功, 而異位, 其善不同, 二多譽, 四多懼, 近也. 柔之爲道, 不利遠者, 其要无咎, 其用柔中也.”라 하였다. 육효(六爻) 중 둘째 효는 중화(中和)에 허하기 때문에 칭찬이 많고, 넷째 효는 임금과 가깝기 때문에(다섯째 효는 임금의 자리임) 두려움이 많다고 한 것이다(鄭求福·盧重國·申東河·金泰植·權悳永, 2014,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582쪽)
註 006
맹자가 말하기를 …… 라 하였다/ 맹자에 이르기를 …… 라고 하였다 :『맹자(孟子)』 공손추장구하(公孫丑章句下)에서 나오는 말이다. “하늘의 때는 땅의 이로움만 못하며, 땅의 이로움은 사람의 화합만 못하다(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
註 007
좌씨(左氏) : 『춘추좌씨전』을 말한다. 『춘추(春秋)』에 대해 5가(家)의 전(傳)이 있었다고 하는 데(『한서(漢書)』 권30 지10 예문 육예략 춘추), 이 가운데 『추씨전(鄒氏傳)』, 『협씨전(夾氏傳)』은 전해지지 않고, 『좌씨전(左氏傳)』, 『공양전(公羊傳)』, 『곡량전(穀梁傳)』 만이 전해진다. ‘좌씨(左氏)’에 대해 안사고(顔師古)는 “左丘明 魯太史”라고 부주(附註)하여 작자가 좌구명(左丘明)이라 하나, 그 진위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는다.(鄭求福·盧重國·申東河·金泰植·權悳永, 2014,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582쪽)
註 008
나라를 일으키는 것은 …… 그 재앙이다 : 『춘추좌씨전』 애공(哀公) 원년조에 나오는 기록이다(鄭求福·盧重國·申東河·金泰植·權悳永, 2014,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5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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